에릭찰스, 기차 3.  2014.06.27 14:31
엑데퓨 스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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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렌셔는 펜타곤 감옥 안에 누워 여러가지 것들을 떠올렸다. 그는 맨 처음 동족들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아자젤과 엔젤, 엠마와 밴시를 떠올렸다가 바깥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미스틱을 생각했으며, 아직 못다한 계획이 그 뒤를 이어 떠올랐을 때 한동안 분노로 인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에릭 렌셔는 스스로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어떤 인류보다도 치밀하고 계획적이어야 했고 실패해선 안 되었다. 에릭은 구하지 못했던 동족, 존. F. 케네디의 얼굴을 기억했다. 날아가는 총알의 궤도를 바꾸는 것은 에릭 렌셔가 몸 안의 근육을 이용해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였다. 요에 누워 육각형의 창 너머 까마득히 높은 천장을 상상하며, 에릭 렌셔는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분노와 평정심 사이, 그건 에릭의 친구가 던져준 가장 중요한 해답이었다. 에릭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눈을 감고 그의 얼굴을 정확히 그려낼 수가 있었다. 에릭은 친구의 파란 눈동자를 생각했고 관자놀이에 얹어진 손가락을 기억했으며, 그의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의 상냥한 친구인 찰스 자비에, 찰스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할 때의 유려하게 굴려지는 발음은 듣기 좋았고, 에릭의 이름을 부를 때 끝 음절에서 강세를 주는 게 사랑스러웠다. 에릭 렌셔는 찰스 자비에의 특별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나 좋은 친구이자 교수이며, 또한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를. 에릭 렌셔에게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에릭."

 에릭 렌셔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가까이 있는 찰스의 얼굴에도 목소리에서처럼 걱정이 스며들어 있었는데, 걱정 외에도 질문에 대한 자책감이 묻어나왔다. 에릭은 그의 맑은 눈동자에 감도는 감정들을 읽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찰스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뜻에서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부유하는 정신을 붙들어 놓기 위해서였다. 찰스의 무릎은 온통 경직되어 한눈에 보기에도 아까 전 질문을 처음 들은 에릭이 굳었을 때보다도 딱딱한 태도를 하고 있었다. 찰스는 조심스러운 음색으로, 말하기 쉽지 않다면……. 하고 말했지만 에릭이 그의 말을 끊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가 말한 그대로 말을 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묵혀두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첫 말을 어떻게 떼어야 할지 쉽지 않을 뿐이었다. 에릭은 맞닿은 찰스의 무릎을 다시 손으로 만져주며 그가 굳힌 몸을 풀길 기다렸다. 에릭의 눈매가 평소 그대로고, 무릎을 만지는 손길이 부드러운 걸 깨달은 찰스가 금방 굳힌 몸을 풀었지만 얼굴에서 걱정스러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에릭은 찰스의 무릎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체온과 혈관에서 뛰는 박동이 얇은 천을 넘어 전달되고 있었다. 찰스는 에릭의 체온이 닿을 때면 쉽게 진정되는 마음을 느끼며 가끔 에릭이 철을 조종하는 뮤턴트가 아니라 마법사는 아닐까 생각에 빠지곤 했다.

 에릭은 약간 입술을 벌렸다가 도로 닫았다. 펜타곤 감옥에 갇힌 10년 동안에 했던 생각들을 찰스에게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에릭은 나는, 하고 운을 떼었다가 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잠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찰스는 에릭의 심정을 알아차리고 그가 말을 할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찰스는 언제나 이런 모습을 취했다. 에릭과 대화를 나눌 때면 친절한 찰스는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 어색한 에릭을 몇 분이고, 혹은 몇 시간이고 기다려주곤 했다. 에릭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얇은 천의 부드러운 재질을 느꼈다. 목구멍에 차올라 빠져나가지 못하고 출렁이는 말들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가 아주 천천히 빼내었다. 에릭은 눈동자를 내리 깔아 무릎 위에 얹어진 자신의 손등을 보았다. 핏줄이 불거져 있지만 굳이 손으로 잡지 않아도 철을 조종할 수 있는 초능력자답게 깨끗한 손이었다.

 "가장 먼저 죽은 이들을 떠올렸어. 계획의 실패와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레이븐과 분노, 그리고 또 분노."

 에릭의 음성은 낮았고 차분했는데, 찰스는 그가 오랜 시간동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분노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에릭의 눈동자에는 기차 안에 내려앉은 고요함과 비슷한 것이 가라앉아 있었다. 찰스는 예전과 다른 그의 굳건한 친구를 보며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10년의 세월을 펜타곤에 갇혀 있느라 무력했을 그의 친구의 모습에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찰스는 에릭이 다음 말을 하기를 기다렸고 어렵게 첫 말을 꺼낸 에릭은 그 다음을 쉽게 이어나갈 수 있었다. 에릭은 눈동자를 들어 올려 오랜 친구의 맑은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자네를 떠올렸어."

 찰스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하고 물었다. 에릭은 그의 물음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에릭은 이어 우리의 마지막 여름과 자네의 저택을 떠올렸어, 라고도 말했다. 찰스는 그의 덧붙인 말에 섞인 그리움을 깨닫고 마찬가지로 그리움에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찰스는 지금도 그 여름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에릭은 찰스의 무릎을 약간 힘주어 붙잡은 후 입매를 끌어당겼다. 저택 뒤로 우거진 수풀과 창문 바깥에서 행크 맥코이와 찰스는 달리기를 했고 멀리 있는 송신기에서는 밴시가 날기도 했으며, 에릭 스스로가 거대한 그것을 저택을 바라보게끔 돌리기도 했었다. 눈동자를 눈꺼풀로 가리며 과거의 기분을 느꼈다. 찰스 또한 에릭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는지 그리움에 잠식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에릭은 눈을 뜨고 천천히 한 번 눈을 깜빡였다.

 "자네가 주는 특별함에 대해서도."

 에릭이 또다시 말을 덧붙였다. 찰스는 그에게 특별함을 주지 않았다. 찰스 자비에가 에릭 렌셔에게 전해준 것은 단순히 친구로써의 호의였고 그로 인한 평범함이었다. 물론 그들이 평범함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고 인간이란 종에도 약간 비껴나가 있었으나 찰스의 행동은 대체로 친구를 향한 평범한 행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찰스는 에릭이 첫만남 이전에 찰스와 같은 이가 없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에릭과 똑같은 돌연변이에 그와 함께 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찰스는 그에게 특별함을 준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그것은 에릭도 마찬가지였다. 찰스는 옥스포드에 교수로 있는 동안 이야기를 나눈 학생들이 많았지만 에릭과 같은 이는 없었다. 레이븐이 찰스에게 소중한 것처럼 그의 인생에서 에릭도 소중한 사람에 속해있었다. 자네도 마찬가지야, 하고 찰스가 말했다. 그의 목울대가 잔잔한 수면 위에 바람이 불듯 미미하게 떨리고 있어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목소리에도 그 떨림이 스며들어 있었다. 에릭은 찰스의 사랑스러움에 대해서도 생각했었지만 부러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할 시간은 많이 있었고 그들이 타고 있는 열차는 아직 정해진 목적지의 반에도 채 도달하지 못했다. 그는 대신에 과거를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숲에 난 길을 거닐다 뒤를 돌아봤을 때 보이는 저택의 테라스나 저택과 숲이 반으로 쪼개져 동화된 것처럼 보여 새로운 세계에 온 것 같다고 여겨지는 숲의 한 부근에 관한 것들이었다. 찰스는 에릭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릭이 본 대부분의 것들은 원래부터 저택에 살고 있었던 찰스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찰스는 에릭의 말을 들으며 그와 저택의 뒤에 우거진 숲을 함께 걷고 있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만으로도 찰스는 즐거워졌다.

 "에릭. 여행이 끝나면."

 찰스는 말을 더 꺼내는 것에 망설임을 느꼈다. 찰스는 에릭이 거절을 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이왕 말을 꺼낸 걸 물리고 싶지는 않았다. 찰스는 에릭을 똑바로 바라보며 아까보다는 망설임이 누그러지고 또렷하게 들리는 어조로 말했다.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 산책하지 않겠어?"

 에릭은 그가 왜 망설였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제안은 마치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 달랐다. 그들의 관계는 틀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둘은 친구였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에릭은 그의 신념 강한 친구의 맑은 눈동자에 담긴 그리움과 약간의 불안함, 그리고 호의를 읽었다. 에릭은 고민했지만 결국에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에릭의 허락이 떨어지자 찰스가 기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본지 10년이 넘었다는 것이 선연하게 느껴지자 에릭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에릭 렌셔가 펜타곤 감옥에서 가장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표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찰스는 에릭이 기차 안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처럼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져있었다. 에릭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찰스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새벽 4시 25분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도중 피곤해 하는 찰스에게 잠을 자두라고 말한지 30분이 지나있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휠체어에 앉아만 있던 찰스의 몸은 약해져 있었고 기차 안에서의 오랜 여행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늦은 시각도 한 몫 했지만 에릭이 오기를 기다리느라 떠안고 있었을 심리적인 부담감이 가장 컸을 것이다. 에릭은 찰스의 감은 눈가와 다물린 입술과 가지런히 놓여진 두 다리를 바라보았다. 에릭은 다시 한 번 펜타곤 감옥에서 떠올렸던 그의 사랑스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에릭을 초대하는 편지는 지금 에릭의 정장 안주머니에 고이 넣어져 있었다. 찰스 자비에의 상냥한 사랑스러움은 계속해서 에릭을 무르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기쁘게도 만들었다. 네 개의 좌석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에릭은 생각했다. 방금 2분이 지나갔다. 에릭은 찰스에게 고정했던 시선을 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스쳐지나가는 나무와 수풀이 자비에 저택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숲을 가로지르며 난 길과 당당하게 세워져 있는 자비에 저택은 마음을 편히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에릭은 느리게 눈을 감고 찰스와 똑같이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늦은 시각에 몰려오는 피로와 찰스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 기차를 싸고 감도는 아늑함이 에릭의 몸을 짓눌렀다. 에릭은 흩어져 가는 정신 속에서 찰스의 미소를 보았고 그와 체스를 두며 쬐었던 난로의 따스함을 몸에 둘렀다. 에릭은 그가 빠르게 계획을 세우고 행동할 때와는 다르게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고요한 숨소리가 둘 사이를 맴돌아 폐에 쌓여 돌았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잠에서 깨기 막 직전에 울리는 새소리처럼 적당한 일상적임을 담아 뿌옇게 들렸다. 잠을 깨우는 그 소리는 기분 나쁜 종류가 아니었고, 덕분에 에릭 렌셔는 오랜만에 편히 잠들었다가 깼다. 에릭이 눈을 뜨고 아직 반쯤 잠에 잠긴 정신을 끌어당기는 동안 그가 느낀 것은 어깨가 묵직하다는 것이었다. 에릭은 찰스가 앉아 있을 자리를 보았는데, 바로 옆자리에 큰 여행 가방 하나와 단촐한 그의 짐 가방이 놓여있을 뿐 앞자리는 비어있었다. 에릭은 순간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다가 어깨에 얹은 묵직한 것이 소리를 내는 바람에 움직이려던 몸을 멈췄다. 에릭의 옆자리에는 자기 전에는 앞에 앉아있었던 찰스가 앉아있었다. 그는 에릭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잠에 빠져 있었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8시 5분으로 4시쯤에 늦게 잠든 찰스가 잠에 빠져있는 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에릭은 찰스가 편히 고개를 기대고 잘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찰스가 언제 깨어나 옆자리로 이동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어깨에서 느껴지는 찰스의 체온이 따뜻했다. 에릭은 편히 잠에서 깨어났지만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따스한 체온에 다시 잠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에릭은 작게 하품했다가 그의 머리 위에 살짝 고개를 기댔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오고, 에릭은 밝아진 하늘에 창문을 두드리고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나무를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언뜻 옆의 좌석에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 같았으나 에릭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에릭에게 중요한 사람은 찰스였지 기차 안을 메우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에릭은 잠깐 눈을 뜨고 앞에 놓인 자신의 가방을 보고나서 눈을 감았다. 그의 가방 안에는 체스가 담겨져 있었다. 찰스가 깨어나면 같이 체스를 두자고 할 심산으로 에릭은 아까보다 빠르게 잠이 들었다. 흩어지는 정신 속에서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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